5편에서 집을 짓는 방법에 대해서 간단히 썼다. 내 경우는 형식적으로는 분양을 받은 것이고, 실질적으로는 참여에 해당한다. 왜 이렇게 진행됐는지 끄적여 본다.
처음에는 직영으로 지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대충 1.5 ~ 2년쯤 전에 구청 건축과에 가서 집을 지으려고 하는데, 어떤 절차가 필요하고, 그때 받은 게 몇장짜리 간단한 브로셔 (구청 홍보물), 그리고 A4 지 4장 분량의 종이였다.
처음에는 그 종이 4장 정도에 주소 쓰고, 이름 쓰고, 그러면 (왜 공문서 양식 있잖아…)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차에 타서 어떤 건가 해서 뒤적여 보고는 잠시 고민하고 며칠 여기저기 전화하고, 업체 방문도 해본 뒤에 포기했다.
9편에서 건축허가시 필요 서류 항목에 적어놨는데, 저런 서류가 다 필요하다. 그러니깐 예를 들어서 2-c 정화조 관련 항목을 보면,
c. 정화조 관련 서류
이런 게 필요하다. 그러니깐 좀 더 자세히 쓰자면, 정화조를 설치하겠다는 신고서, 정화조를 설치할 업체의 사업자 등록증, 자격을 입증하는 시공업등록증, 자격자가 몇명인지, 그 자격자들이 적합한지를 증명할 수 있는 자격증 등의 사본, 그리고 땅을 얼만큼 파고, 거기에 콘크리트 또는 벽돌 또는 그냥 묻든지 .. 뭐 하여간에 그런 도면, 그리고 왜 그 용량의 정화조를 선정했는지에 대한 계산 근거 (예를 들어서 4인 가족이고, 하루 한번 변을 본다고 치면 용량이 얼마고, 이걸 1년에 한번 비우면 어쩌구 저쩌구 .. 그래서 용량이 얼마다… 이런 것), 그리고, 그 공사는 땅을 얼만큼 파서 벽을 얼마의 두께로 만들고, 거기에 콘크리트 등으로 보강을 하고 … 주저리 주저리… 이런 내용을 다 작성해야 하고, 그 내용이 다 법적인 요건에 맞아야 한다.
정화조만 이런 게 아니라, 수도, 전기, 전등, 보일러, 개스 (결국 우리집엔 도시가스가 안들어와서 이건 빠졌다.) 등등 이 모든 서류를 갖추어서 내야 한다는 거였고, 몇다리 건너서 아는 건축사무소(그러니깐 허가방…) 에 물어보니 그짓을 하느니 몇백만원 주고 자기한테 맡겨라 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길에 그 건축사무소에 들러서 커피 한잔 얻어 마시면서 마침 작성하여 구청에 집어넣을 서류의 높이가 대충 한뺨은 넘는 것을 보고는 빛의 속도로 직영으로 집을 짓겠다는 생각을 포기했다. 내 생각엔 구청 서류 창고에 있는 건축관련 서류만으로도 건물 몇채는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저 두께의 서류를 다 보기는 하려나 ?)
직영을 포기한 후에 알아본 게 대행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또한 포기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적당한 소장을 찾기는 게 불가능했다. 일단 내가 아는 범위내에서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분이 몇분 계시기는 했지만, 대부분 이미 딴 일을 하고 계시거나, 한국을 떠나서 다른 나라에서 일하시는 분이 계셨고, 몇몇 분들은 자기가 하겠다고 나셨지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분들이거나 (친구 사돈 처녀 애인의 5촌 당숙모의 남동생 .. 뭐 이런 관계 정도 ?) 일은 하실 수 있는 것은 아는데, 뭔가 예전에 사고를 치거나 해서 맡기기 애매하신 분들 (신용불량자라든가, 부도내셔서 좀 복잡하다든가..) 인 경우여서 믿고 맡기기가 좀 그래서 포기했다.
주변에서 보면 대행으로 맡겼는데, 중간에 도망갔다든가, 자재 빼돌렸다는 얘기를 워낙 많이 듣다보니 사실 여부는 확실친 않더라도 맡기기는 좀 어려웠다.
결국 이렇게 하다보니 형식상으로는 분양이 되었다. 하지만, 앞에서 몇번 얘기했듯이 다 지어진 집을 단순히 가격만 치르고 들어간 게 아니라 설계부터 일정부분 참여하여 집을 지었다. 하지만, 이렇게 했음에도 자잘한 절차상의 문제가 발생해서 계획보다 거의 석달이 지나서야 보존등기가 완료되었다.
한 10년쯤 뒤에 다시 집을 고치거나 더 늘려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때는 직영으로 해볼 생각이다. 이번에 경험이 쌓였으니 집수리/증축/개축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 라는 어찌 보면 참으로 무모한 생각을 해본다. 뭐 그때 가서 또 생각이 바뀔 수 있으니깐 …
2014/11/04 akp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