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도구

사이트 도구


논현동_이야기_43편

어제 퇴비/비료 얘기를 좀 했다.

퇴비/비료를 밭에 뿌리는 이유는 뭘까 ? 간단하다. 작물에서 소출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거고, 다른 말로 하자면 농사가 잘 되게 하기 위해서다.

수경재배같은 특이한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농사는 대부분 흙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농사가 잘 되는 땅(흙)이 있고, 안되는 땅(흙)이 있다.

집에서 분갈이 같은 것을 해봤다면 식물이 자라는 단계에 따라서 적합한 흙이 있다는 것을 알 거다.

예를 들어서 씨앗을 심어서 싹을 틔울 때는 흔히 '상토'라고 부르는 흙을 이용한다. 사실 이건 흙이라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흙은 아니다. 대부분은 식물 부산물이다. 코코넛 등의 야자수나 야자 열매를 잘게 갈아서 처리한 거다. 그리고 이거랑 가장 비슷한 형태의 흙이 산에 있는 부엽토인데, 부엽토의 표층이라고 보면 된다. 왜냐하면 상토는 양분이 많지 않고 적당히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건 씨앗이 싹 틀 때, 양분이 너무 과다하면 죽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토'를 쓰는 이유는 이건 소독이 되어서 나오기 때문이다. 저런 야자수 등을 잘게 만든 것을 곰팡이나 해충, 각종 벌레의 알 .. 이런 것을 고온에서 쪄서 죽인 후에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트나 모판에 상토를 넣고 거기에 종자를 심어서 싹을 틔워서 옮겨심는 거다.

상토도 종류가 꽤 다양하다. 모래가 섞여 있는 것도 있고 등등 …

밭농사가 잘 되는 흙의 물리적 성질은 기본적으로 물빠짐(배수)이 좋고, 흙이 딱딱하게 굳어 있지 않아서 공기 순환이 잘 되는 흙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갈아서 뒤집고, 흙 크기(흙 입자 크기)가 다른 흙을 섞어주는 일을 하곤 한다. 다른 흙을 섞는 것을 '객토'라고 한다. 벼농사의 경우 물빠짐이 좋으면 안되겠지 .. 이렇게 작물과 농사에 따라서 적합한 흙은 다르다. 어제 얘기했던 블루베리 같은 특용작물은 아예 블루베리용 흙이 따로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블루베리 등의 베리류 농장에 가보면 땅에 심겨져 있는 게 아니라 큼지막한 통에 흙이 채워져 있고 거기에 심어둔 것을 볼 수 있다. 그 블루베리용 흙으로 농장 전체를 채우기는 한국 상황에서는 어렵거든 …

물리라는 얘기가 나왔으니 화학 얘기도 나온다. 위에서 얘기한 퇴비/비료 .. 이런 걸 밭에 뿌리는 게 화학적 성질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다. 작물이 자라는데 필요한 양분을 공급하는 게 바로 비료다. 그게 천연성분이든, 유기질 비료든, 공장에서 나온 거든 …

그리고, 생물학적 성질도 있다. 흙속에 미생물이 적정하게 있어서 저런 비료 성분들을 잘 분해해서 식물이 흡수하기 좋은 상태로 바꿔줘야 한다. - 화학비료는 미생물이 없어도 식물이 잘 흡수한다… 그런데, 어제 얘기한 퇴비, 유박 .. 이런 종류를 흔히 유기질 비료라고 하는데, 이런 것은 밭에 뿌린다고 바로 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미생물에 의한 발효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유기질 비료를 뿌리고 일주일, 길게는 한달 .. 보통 이주일 정도 기다려야 하는 거다. 그동안 발효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발효가 되어서 유기질 성분이 무기 성분으로 바뀌고, 그게 땅속으로 스며들어서 식물들이 흡수할 수 있게 되는 거다.

이렇게 물리, 화학, 생물학적 성질이 잘 갖추어진 흙이 농사가 잘되는 흙이다. 이렇게 잘 갖추어진 것을 “지력”이 높다. 라는 표현을 쓴다.

다시 한 줄로 정리하자면, 농사가 잘 되는 좋은 흙은 물빠짐이 좋고, 딱딱하게 굳지 않아 공기 순환이 잘 되며, 각종 무기 성분을 적정히 포함하고 있고, 적정한 미생물이 살고 있으며, 습하지 않을 정도로 물을 저장하는 보수성이 있어야 한다.

흙이 딱딱하게 굳지 않게 하고, 유기물을 어느 정도(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많이..) 공급해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작물을 수확하고 남은 잔존물을 다시 잘게 잘라서 밭에다가 뿌려주는 거다. 예를 들어서 논에서 벼를 수확하고 나면 볏짚을 다시 논에 뿌려주는 거다. 논이 많은 곳을 가다보면 마시멜로를 만들어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건 볏짚을 비닐로 감싸서 내부에서 발효하게 해서 소 먹이로 쓰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하지만, 몇년에 한번은 마시멜로를 만들지 않고 논에 뿌려두기도 한다. - 벼 수확기계인 콤바인에 이런 기능이 있다.

다른 작물도 마찬가지다. 옥수수를 키웠으면 옥수수 수확후 남은 옥수수대를 잘라서 다시 밭에 뿌려뒀다가 퇴비/비료 뿌리고 같이 한번 갈아 엎으면 된다. 이렇게 몇년 지나면 그 흙은 꽤 좋은 흙이 된다.

농기계 중에 “파쇄기”라는 게 있다. 나무가지, 고추대, 옥수수대 .. 이런 것들을 잘게 잘라주는 기계다. 비싼 건 몇백만원쯤 하지만, 용량이 크지 않은 작은 것은 십여만원이면 살 수 있다.

보통 저런 옥수수대, 고추대, 과일 나무 전정하고 남은 나무가지 .. 이런 게 처치하기 힘든데 … 저런 거 있으면 쫙 갈아서 다시 밭에 뿌려주면 된다.. 물론, 직접 해도 되고, 며칠전에 얘기했던 농업기술센터 나 농협에 의뢰해도 되고, 기계를 임대해서 써도 된다. - 임대비가 하루에 2만원 몇천원인 걸로 기억한다. 기계 성능에 따라 다르겠지 …

그리고 어제도 얘기했던 내용인데, 같은 작물을 한 곳에서 연속으로 짓지 않고 돌려지어야 한다. 이걸 '돌려짓기'라고 하고 한자어로는 '윤작'이라고 한다. 지금도 보통 3,4년 이상은 같은 작물을 한 곳에서 짓지 않는 게 기본이다.

보통은 돌려짓기와 휴경을 섞어서 한다. 돌려짓기와 휴경을 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 때문이다. 흙 속의 영양분 소모, 잔류 염류 등으로 인한 토양 독성 증가 .. 그리고 병충해 .. 병충해에 대해선 나중에 얘기하자.

영양분 소모는 퇴비/비료로 어느 정도 보충이 가능하고, 잔류 염류 등으로 인한 토양 독성이 증가하는 것도 석회 등을 뿌려서 어느 정도 제어가 가능하고, 병충해 나중에 따로 얘기하겠지만, 같은 작물을 계속 키우면 병충해 발병하면 답이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농약으로 어느 정도 제어가 되지만, 그 병충해에 대한 대책 자체가 없어서 발병하면 포기해야 하는 경우는 여전히 많다.

잔류 염류 등으로 인한 토양 독성 문제는 사실 꽤 심각한 문제다. 많은 식물은 자라면서 알칼로이드(질소를 포함하는 알칼리성 유기물질, 식물은 스스로 이동하지 못하므로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일종의 독성 물질을 내 뿜는데 그중 하나다.) 계열 등을 포함하는 다양한 물질을 배출한다. 이게 계속 토양에 축적되면 그 독성 때문에 자기 스스로 죽게 된다. 그리고 퇴비/비료 등이 분해되면서 발생하는 각종 산성 염 계열 물질들이 100% 식물에 흡수되지 않고 땅에 잔존하여 발생하는 잔존 염류 .. 등인데, 이건 사실 비가 많이 내려서 물로 씻게 가기를 바라는 수 밖에는 없다. 대충 1년 또는 반년쯤 휴경하면 그동안 내리는 비가 이런 것들을 녹여서 흘러가게 한다.

인삼, 담배 .. 이런 특용작물들은 지력을 빨아먹는 수준이 아니라 파괴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단순히 영양분을 소모하는 수준이 아니라 토양독성 증가가 매우 심하기 때문이다. 3년 이상 인삼을 키운 밭은 10년쯤 휴경하는 게 권장되고 있고, 고급 인삼인 9년삼을 한번 재배하면 20년 휴경하라고 권장할 정도다. 아니면 아예 흙을 싹 떠서 빼고 다른 곳에서 흙을 통째로 가져오거나 … 실제로 현재의 인삼 농사는 밭의 흙을 통째로 교체하는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담배도 인삼보다 좀 덜한 정도일 뿐 마찬가지다.

가끔 농촌에 가면 농사 안 짓고 놀리는 땅을 볼 수 있다. 농사 안 짓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 중 하나는 이러한 이유로 1년 또는 2년쯤 휴경하는 경우다.

자.. 다음번 글은 농약 얘기다. 병충해 … 에 대해서 .. 알아보자.

ps. 아 밑천 바닥나고 있다.. 큰일이다.


2022.04.21 akpil

논현동_이야기_43편.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2/05/25 11:55 저자 akpil

Donate Powered by PHP Valid HTML5 Valid CSS Driven by Doku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