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귀농/귀촌해서 현실적으로 마주치는 문제 중 하나인 “텃세”에 대해서 좀 적어보자.
“텃세”를 무엇으로,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 대충 뭔가 자기네들끼리만 놀고, 나는 빼놓는 것 같고 … 옆집 아저씨가 하는 일은 아무말도 안하면서 내가 뭔가 하면 득달같이 달려와서 소리지르고 … 이러는 것 같다. 시골에서 텃세가 세다더니 이건 좀 …
이런 얘기 많이 들었을 거다.
먼저 .. 텃세가 없다고는 말 못하겠다. 나도 느끼고 있다. 예를 들어서 우리집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최씨 집성촌인데, 마을에서 최씨가 아닌 집은 우리집과 저쪽에 있는 강씨네 둘뿐이다. 당연히 집성촌이니 두집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친척관계로 엮여 있다. 게다가, 이 최씨들이 이 동네에 정착한 것도 6.25 한국 전쟁 지나고 대략 1950년대 중반 정도고, 할아버지께서 번잡한 시내(… 라고 할 게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 를 떠나서 이사오신 것도 1950년대 후반이라서 몇년 차이도 안나지만 어쨌든 친척들끼리 뭉치는 건 당연한 거라고도 볼수 있다. 하지만, 위치가 위치인지라, 이제는 대부분 빠져나가고 10가구도 안 남은 곳이고, 그나마도 1세대들은 대부분 돌아가셨고, 2세대들이 70대 중후반이고 .. 3세대가 대충 내 또래다… 그러다보니 예전처럼 끼리끼리 모이고 .. 이런 건 별로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대충 이런 텃세.. 가 생기는 건 초반 며칠, 1달 이내다. 아예 이사를 왔든지, 주말에 하루 이틀 와서 주말 체험 농장식으로 연습삼아서 몇년 하고 그 뒤에 귀농/귀촌할 건지 … 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일단, 그 지역에 정착해서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 농사짓겠다고 들어온 사람은 “외지인”이다. 1년이 지나든, 10년이 지나든 50년이 지나든 .. 이건 바뀌지 않는다. 다만, 좀 친한 외지인이냐, 서먹서먹한 거냐, 얼굴도 안 보고 사는 거냐 정도의 차이가 있다.
일단, 초반 며칠, 1달 이내에 … 동네에서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인사하자. 가까운 집들은 다니면서 인사도 좀 하고 … 아직 정착한 건 아니고, 밭에 농막 하나 가져다 놓고 연습삼아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빨리 핵심인물 3, 4명을 파악해야 한다. 이장(또는 통장), 부녀회장, 영농회장 .. 그리고 그 마을에서 가장 나이 많은 (또는 서열 높은) 사람 … 경우에 따라서는 이장/통장, 부녀회장, 영농회장이 같은 사람일 수도 있고, 그 사람이 또 서열이 가장 높을 수도 있다. 대개는 이장/통장이 영농회장도 겸하기 때문에 파악하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
이들을 왜 파악해야 하느냐 하면 그들과 적어도 친한 척은 해두는 게 좋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11월 말쯤에 내년도에 쓸 퇴비/비료 신청 받는데, 이거 이장/통장 또는 영농회장한테 연락간다고 했잖아. 물론, 그냥 그 단계 건너띄고 구청/군청/농협에 가서 직접 신청해도 되지만 (그게 사실 더 편하기는 하다.) 저 사람들하고 친한 척이라도 해뒀다면 퇴비/비료 신청하라는 말을 해주거나, 문자메시지라도 보내줄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 때를 놓칠 수도 있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구청/군청/농협에 가서 직접 신청하면 되기는 한다.
이들과 친한 척 하면서, 적어도 2,3년은 그 동네 경조사, 행사는 다 챙기고 방문해야 한다. 누구 조카 결혼식이라든가 … 이런 거 말이다. 그걸 왜 ? 라고 할텐데 .. 귀농/귀촌이라는 건 어찌 보면 새로 회사에 입사하는 신입사원이 된다는 거다. 농촌에서 저런 경조사, 행사는 마을 행사다. 다른 말로 하면 회사에 막 입사한 신입사원이, 회사 워크샵이든 회의든 .. 그런 것에 특별한 사유 없이 빠진다는 건 … 꽤나 용기 있는 행동이다. 자 그러니 용기있는 자가 될 것인지, 잘 적응할지는 스스로 판단하자.
그리고, 잘하는 건 잘 한다고 못하는 건 못한다고 미리 선을 그어두어야 한다. 어찌됐든 농촌에는 대부분 노인들이 많고, 상대적으로 젊은 귀농/귀촌하는 사람에게 이것저것 해달라고 얘기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서 티비가 안 나온다고 해서 가보면 실제로는 전혀 이상이 없는데, 리모컨에 배터리가 방전된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런 것 한두번 해주면 그 동네 전속 A/S 기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다가 어쩌다가 못 고치거나,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고 하면 … 욕 먹게 된다. 리모컨 문제가 아니라, 펌프, 모터, 예초기 등등 .. 많다. 그냥 대놓고 못한다고 해놓고 .. “저는 못하지만, 이거 어디서 고칠 수 있는지 찾아서 연락해 드릴까요 ?” 라고 얘기하면 되는 거다. 엔진식 예초기에서 가장 많이 고장 나는 부분은, 오랫동안 (대충 3,4달 쯤 ? 겨울에 안 쓰다가 봄에 쓰려고 할 때 이런 경우 많다.) 안 쓰다가 모처럼 쓰려고 할 때 시동이 안 걸리는 경우다. 대부분은 캬브레이터라고 하는 기화기 부분에 연료가 남아 있다가 오래 안 써서 굳어버린 경우다. 대개는 뜯어서 휘발유(또는 경유)에 하루 이틀 담궈두면 연료가 녹으면서 해결되지만 .. 근본적인 해결책은 설명서에 잘 쓰여 있다. 1,2 달 안 쓸 것 같으면 연료 다 뺀다음에 시동 걸고 꺼질 때까지 그냥 켜두라고 … 길어야 2,3분인데 .. 기계 내부에 남아 있는 연료 다 소모하고 시동 꺼지면 그대로 세워두면 되는 거다. 그런데 .. 이런 걸 아는 체 하면 .. 그 다음부터는 전속 A/S 기사가 되고, 온 동네 예초기 고치러 다녀야 한다. 그러다가 어느 집 예초기 고장 났다고 고치러 왔는데, 바쁘다고 안 고쳐주면 ? “그 사람 안 그렇게 봤는데, 알고보니 … ” 라면서 안 좋은 소문 퍼지게 마련이다. 그럴 때 어떻게 한다고 ? “이거 어떻게 고치는지 모르는데, 옆에 보니 야마하 꺼네요, 제가 A/S 센터에 전화해드릴게요.” 또는 “농협 가면 고쳐준다는데, 농협에 물어볼까요 ?” 가 모범답안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마을발전기금” 이라는 것을 걷는 경우도 있다. 이게 현실적으로는 그 마을에 필요한 돈을 미리 내는 거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서 아직 수도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는 저기 계곡에서 파이프 연결해서 펌프로 물 끌어와서 물탱크 몇개 놓고 거기에 저장해서 쓰는 곳도 많다. 그럴 경우, 수도 펌프 및 전기 사용료 .. 로 한달에 얼마씩 각 집집마다 부담하고, 또 파이프 연결하고 물탱크 설치할 때 들어갔던 돈을 부담하자는 뜻도 있다. 어차피 물을 써야 하고, 전기도 써야 한다. 너무 비싸지 않다면 .. 그냥 부담하고 잘 써먹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저걸 내기가 부담스럽다면, 위에서 얘기했던 사람들 .. 기껏해야 10명도 안된다. 그 사람들에게 밥 한끼 좀 거하게 대접하고 뽕을 뽑아 먹겠다 라고 생각하면 뭐 그리 나쁘진 않다.
이렇게 열심히 하면, 그래봐야 “외지인”이다. 다만 적대시 하지 않는 정도가 최선일 거다. 물론, 개인적으로 친한 몇몇 사람들은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자. 서울, 대도시 아파트 단지에는 텃세가 없나 ? 오히려 더 심하잖아. 친구네 집에 가려고 하는데, 입구에서부터 바리케이트로 막는다. 어떤 시골 마을도 외지에서 동네 사람 보러 오는 사람을 마을 입구에서부터 못 들어오게 막는 곳은 없다. (조류 독감 같은 게 퍼져서 이걸 막으려고 차단하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좀 특별한 경우고 ..)
친구네 집에 가려는데, 친구에게 주차 등록해달라고 차 번호 알려주고 ..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도 2시간까지만 인정돼서 주차료를 내야하고 .. 거래처에 갔는데, 주차했다고 주차료 내라고 하고, 어쩔 땐 차도 못 대게 해기도 한다. 이런 건 텃세가 아니고 뭘까 ?
그런데, 언론이나 귀농/귀촌 실패했다는 사람들은 텃세 탓을 많이 한다. 그거야 당연히 그들은 도시 사람이니까 그 관점에서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5년전쯤, 아니 10년전쯤 한참 포도밭 열심히 할 때, 대충 이맘때쯤이면 전국에서 전화가 오거나 직접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 지금은 아니지만,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스타팜(star farm) 이라 하여 전국에서 각 작물별로 대표 농장을 선정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거기에 우리 포도밭이 선정됐었다. 포도 농사를 배우겠다는 건데 … 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전화 하고, 찾아오곤 했었다. 자 배우는 것도 좋고 전화하는 것도 좋다. 그런데, 말 그대로 시도 때도 없는 거다. 자기가 회사를 다녀서 늦게 끝나서 늦게 전화했단다.. 밤 10 시 넘어서 … 갑자기 밭으로 찾아와서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느냐고 묻는다. 지금… 퇴비 200포대 나르고 있는 것 안 보여 ? 당신 붙잡고 설명하면 그만큼 늦어진다고 … 대답을 안하거나 전화를 안 받으면 … 마치 맡겨둔 답을 찾는 듯이 대한다. 당연히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 텃세 부리지 말라고 한다.
누가 텃세를 부리고 누가 행패를 부리는 건가 ? 오늘 중으로 20kg 짜리 퇴비 200포대 포도밭에 날라다 놓고 뿌려야 하는 사람 붙잡고 “이파리가 하얗게 되는 ..” 이라면서 병명도 모르면서 농약 어떤 거 얼만큼 언제 어떻게 뿌려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문제일까 ? 아니면 그런 질문에도 친절하게 답을 해줘야 한다는 걸까 ?
텃세는 저런 것에 대한 반작용이다.
2022.04.13 akp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