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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현동_이야기_29편

귀농/귀촌 이라는 건 약간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어떻게 보면 스타트업 업체를 하나 차리는 거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생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원자재 확보, 원자재 수급, 생산, 재고 관리, 수요처 파악, 판매, 수금, 투자 .. 까지 쭉 이어지는 거고, 그것을 사실상 거의 혼자서 해야 한다는 거다.

쉽게 말하면 들어가는 돈은 적게, 들어오는 돈은 많게 .. 가 핵심이다.

귀농/귀촌 관련 글들을 찾아서 읽다보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공판장 등에 내보내지 말고 직거래를 하라.. 라는 내용들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게 모든 경우에 맞는 게 아니다.

직거래를 하려면, 포장도 해야 하고, 택배로 보내기도 해야 한다. 그것도 한국 사람 성격에 맞게 주문하면 늦어도 3일 내에는 도착해야 한다.

포장하려면 ? 세척, 분류, 포장 .. 이것도 택배로 막 날아다니는데도 멀쩡할 정도의 튼튼함을 요구하고, 아무 상자에 넣을 수도 없다. 겉면에 자기네 농장 이름이라도 적어둬야 한다. 이거 박스 10개 주세요. 100개 주세요.. 해서는 아무도 그렇게 해주지 않는다. 적어도 몇백개, 많게는 천개 단위가 되어야 한다.

한 상자에 10kg 들어간다고 치고, 상자 1,000개면 .. 10톤이다. 거기에 뭔가 담아서 한 상자에 5만원 받는다고 치면 .. 5,000만원이다.

들어가는 비용을 보자. 10kg 상자가격이 1,200원쯤 한다. 500개쯤 주문하면 … 1,000개 주문하면 1,150원 정도 할 거다. (겉면에 뭘 인쇄하느냐 물에 좀 더 강하냐 .. 뭐 이런 것에 따라서 1,000 ~ 1,500원 사이쯤 된다. 감자 같은 경우는 수분이 적으니까 1,100원짜리 써도 되고, 수분이 많은 작물의 경우에는 종이 몇장 더 들어가야 하고 그러면 1,500원쯤 한다. ) … 상자 가격만 100만원이다.

택배비 .. 10kg 짜리면 계약해서 물량이 어느 정도 이상이다. 라고 하면 3,500 ~ 4,000원 정도 하겠지만, 그 정도가 안된다 라고 하면 5,000원쯤 할 거다. 5,000 x 1,000 = 500만원이다.

반품, 폐기비용이 5~10% 쯤 된다. 600만원의 10% .. 60만원 ..

대략 포장/배송 비용만 660만원이다. 5,000만원 받아서 660만원이 박스로 나가는 거다. 대충 4,300만원 …

직거래해서 5만원짜리면 공판장으로 내보내면 10kg 에 4만원쯤 받을 거다. 4,000만원 … 공판장 수수료가 6% 다. 240만원 빼면 .. 3,760만원 …

4,300 - 3,760 = 540만원 … 큰 돈이다.

자 그런데 빼먹은 게 있다. 저거 포장하고 분류하고 택배상자에 넣고, 주문 들어온 것 엑셀로 받아서 택배 용지에 인쇄해서 붙이고 … 이거 하는 데만 한명이 거의 풀타임으로 붙어야 한다. 2021년 상반기부터 일용직 하루 일당이 15만원이다. 그런데, 이거 일용직에게 맡길 수 없잖아 ? 내가 또는 가족 중에 믿을만한 사람 누군가가 해야 한다. 15만원보다 비싼 거다. 20만원 잡자.

이 작업을 한달쯤 한다고 쳐보자. 25일 잡으면 20만원 x 25일 = 500만원이다. 540 - 500 = 40만원 … 나 같으면 안한다. 나중에 어느 정도 레벨에 올라서 자기 상표가 생기고 가격을 50,000원이 아닌 6 ~ 7 만원쯤 받을 수 있다면 그때쯤 하겠다. 택배 보내고 클레임 받고 욕 먹고 … 에휴 … (포도를 한 3년쯤 택배로 팔아봤는데.. 욕 나온다…. 분명히 무농약이라고 했음에도 포도알갱이 사이에서 벌레 나왔다고 클레임 걸고 반송시키고 .. 한박스 거의 다 먹고는 반품하고 .. 헤유 ..) 거기에 플랫폼 수수료가 .. 카드 결제 수수료와 더하면 대충 적어도 5%, 대략 10% 쯤 된다.

공판장에는 그냥 그 튼튼한 플라스틱 노란색 바구니에 들어가는대로 담아서 (대충 10 or 20kg 단위) 내보내면 거기서 알아서 한다. 포장도 안해도 되고, 택배 상자에 안 넣어도 되며, 택배 용지 인쇄 이런 거 안해도 된다.

스타트업에서 처음부터 자기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기껏해야 본인 + 가족 2,3 명 정도 + 가끔 일용직 .. 정도의 한정된 자원 내에서 모든 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 처음부터 너무 판을 크게 벌이면 안된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다.

어제 내가 얘기한 단어가 하나 있다. “귀농빚쟁이” …

뭐 운이 없어서 귀농하자마자 3년간 내리 흉작이었다.. 라든가 .. 고추를 선택해서 심었더니 병충해가 풍년이었다.. 류의 경우를 제외하고, 이 사람들의 공통점이 몇가지 있는데 … 판로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초기 투자가 너무 많다는 거다. 지역 농협 담당자 얼굴도 모르고, 누가 담당인지, 누가 그 가격을 책정하는지, 그 가격 책정은 어떤 구조로 이루어지는지도 알아보지 않고 덜컥 “요새 직거래가 …” 라면서 택배 박스 수천개 인쇄해서 들여다 놓고 … 이랬던 거다. 물론, 시설 투자도 많이 했지 … 3억원 지원금 대출 받아서 토지 계약하고, 비닐하우스 짓고 … 농사 경험이라곤 100시간짜리 귀농/귀촌 교육 받은 게 전부인데 ..

뭐 사실 남 얘기할 때가 아니긴 하다… 우리집 창고에도 포도박스가 한 10,000 … 박스 남아 있다.. 하아 … 이거 가지고 뭐하지 …


2022.04.05 akpil

논현동_이야기_29편.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2/05/25 11:41 저자 akp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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