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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현동_이야기_21편

지금까지 대략작으로 귀농/귀촌/농사에 필요한 내용을 수박겉핡기식으로라도 훑어봤다.

농지 구매 절차, 농업경영체 등록, 농막 설치, 농협 가입, 비닐하우스, 퇴비, 비료, 농약 등 농사 짓는데 필요한 몇가지 내용들 … 그리고 1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 간단하게나마 알아봤다.

이번 글에서는 실제로 농사 짓는 것을 시작해볼까 한다.

작물에 따라 난이도는 천차만별이다.

처음부터 어려운 것으로 시작하면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너무 쉬운 건 … 그게 낫겠지 ?

일단, 텃밭 수준이 아닌 실제 농사, 그러니까 면적 기준으로 약 1,000평방미터 정도 되는 곳에서 특별히 관리 안해도 경험삼아, 워밍업삼아 하기 쉬운 건 몇가지가 있는데, 나는 2가지를 추천한다. 옥수수와 늙은 호박이다. 그래 .. 작년에 내가 밭에 심었던 거 그거다.

이걸 심어보는 이유는 그 농지의 지력을 알아볼 수도 있고, 농사에 적합한지, 객토가 필요한지, 지력이 부족하면 퇴비나 비료를 더 주어야 하는 건지 … 전에 농사짓던 사람이 너무 많은 퇴비와 비료를 줘서 오히려 퇴비나 비료 성분을 빼냐야 하는 건지 .. 물빠짐은 어떤지 … 이런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객토나 성토 후에도 그 땅 상태가 어떤지를 확인하기에도 적합하다.

작년에 옥수수와 호박은 … 농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실패한 거다. 수확량이 형편없다. 하지만, 위에서 얘기한 땅 상태를 알아보는 것으로는 성공했다. 성토를 했는데, 성토한 흙에 영양분이 너무나도 없었고, 작년 11월에 퇴비 20kg 짜리 30포대 정도를, 그리고 올해 2월에도 20kg 짜리 25포대를 뿌렸다. 일반적인 경우의 거의 1.5 ~ 2배에 해당되는 양이다. 보통 밭 작물은 1년에 1,000 평방미터(약 300평)에 20kg 짜리 퇴비 25 ~ 30포대 정도를 뿌린다.

수확량이 매우 낮았기에 영양분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았고, 퇴비를 더 뿌려야 한다. 는 것을 알았다는 얘기다.

또 한가지는, 객토나 성토를 하고 나면 그 흙은 원래 거기에 있던 흙 위에 얹혀져 있는 것이어서 어느 정도 가라앉아서 안정화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서 50cm 정도 성토를 했다면 1년쯤 지나면 20~30cm 정도로 가라앉아야 한다는 얘기다. 장마철 지나고, 겨울 지나야 대충 안정화된다. 3년전에 1차 성토를 했고, 2년전에도 일부 너무 심하게 가라앉은 곳에 2차 성토를 했으며, 작년 4월 말경에도 한번 더 성토를 했다. 그리고 비가 몇번 온 뒤에 어느 정도 가라앉은 것을 확인하고 옥수수와 호박을 심었다. 물론, 그때도 아직 땅이 다져지지 않았기 때문에 성토한 깊이만큼 푹푹 꺼지곤 했다. 지금도 그런 곳에 몇 곳 있고, 윗밭은 그 정도가 조금 더 심하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서 점점 다져지게 된다. 이게 짧게는 1년, 길면 3년쯤 걸린다.

어쨌거나 옥수수와 호박 얘기로 돌아와서 ….

중부지방 기준으로, 옥수수 씨앗을 모판에 파종하는 시기는 4월 초/중순이고, 호박은 3월 중/하순이다. 작년에는 4월 말에 성토를 했고 그게 비가 몇번 오고 약간 땅이 가라앉았다고 생각해서 5월 20일경에 모종을 밭으로 옮겨 심었으니 (이걸 '정식'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농사일정보다 한달 가량 늦게 시작한 셈이다. 이 작업할 때도 몇몇 곳은 무릎까지 푹푹 빠졌었다.

어쨌거나, 비료도 제대로 안 주고, 물을 제대로 안 줘도 7월 중순쯤 되니까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호박잎이 나오는 정도, 옥수수가 자라는 정도를 보고 아 .. 영양분 정말 없네 .. 싶었고 당연히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수확한 양은 … 제대로 농사를 지었다면 나올 양의 10%도 안됐다.

이 두 작물은 그만큼 특별한 관리가 필요 없는 작물이기도 하다. 물론 제대로 키우려면 많은 관리가 들어가야 하지만, 애호박이나 고추 등에 비해서는 특별히 관리할 게 없다. 일주일에 한번, 이주일에 한번 정도 가서 보면 되고, 특별히 이랑과 고랑을 만들어주지 않아도 된다. 이걸로 먹고 살 거라면 만들어주면 좋다. 하지만, 안 만들어줘도 된다.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기지만, 농사를 처음 짓는다면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고추 농사는 하지 마라. 어마어마어마하게 어렵고 많은 관리가 필요하다. 고추 모종 심고, 고추지지대 설치하고, 어느 정도 자랄 때마다 옆으로 쓰러 지지 말라고 줄 매줘야 하고 고추가 열리기 시작하면 그 높이에 맞춰서 또 줄 매줘야 한다. 그리고 잡초 자라지 말라고 멀칭 비닐도 깔아줘야 하고 등등 …. 그리고 수확하고 나서도 저 고추지지대 뽑아주고, 멀칭 비닐 벗겨내고, 고춧대 뽑아서 잘라서 처리해야 한다. (고춧대는 고추지지대가 아니라, 그 왜 코로나19 초기에 다려먹으면 좋다고 했던 그거다.)

예전에는 저런 고춧대는 태워버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태워버려야 그 안에 있던 벌레도 타죽어서 다음해 병충해도 예방할 수 있는데 … 어쨌거나 저런 농업폐기물은 가연성 폐기물로 분리배출하거나 … 잘게 잘라서 밭에 뿌리거나, 주변에 화목 난로용 연료 만드는 공장 같은 데서 가져가서 펠릿 재료로 쓰기도 한다.

옥수숫대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옥수수는 뿌리가 질기고 넓게 퍼지므로 뽑기도 쉽지 않을 거다. 보통은 옥수수 수확을 마치고 나면 예초기로 옥수수를 쭉 잘라버린 후에 밭을 로타리(또는 관리기)로 갈아엎어서 뿌리가 드러내게 하거나 땅 속에서 갈리게 하는데 … 일단 지금 이 글에서 다루고 있듯이 처음에 해당 농지가 어떤 상태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시험 삼아서 심어보는 단계에서는 그냥 삽 한자루 들고 다니면서 파내면 될 정도다. 물론, 처음 해보는 거니까 힘은 들 거다. 하지만, 앞으로 들어갈 힘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ㅋㅋㅋ

이런 옥수숫대나 고춧대 … 이런 거 처리하기 가장 좋은 방법을 내 경험으로 얘기하면 …

1. 옥수숫대, 고춧대를 예초기로 잘라서 모은다. - 예초기쯤은 사라.

2. 옥수수뿌리, 고춧대뿌리를 관리기로 갈아 엎어서 땅 위로 드러나게 한 뒤 모은다. - 관리기는 없을테니,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부탁하거나, 농협에 의뢰하면 해주기도 한다. 동네 사람과 친하면 점심 한끼 사주면 해주기도 하고, 몇만원쯤 받을 수도 있다. 경인지역에서 형성된 가격은 평당 400~500원 사이다. 대략 1,000 평방미터(약 300평) 이면 15만원 정도이니 … 친하게 지내서 점심 한끼로 때우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3. 파쇄기로 옥수숫대, 옥수수뿌리, 고춧대, 고춧대뿌리를 파쇄한다. - 파쇄기는 싼 건 20만원 정도, 비싼 건 수백만원이다. 주변 농협에서 몇만원에 임대해 주기도 한다. 이 역시 동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으니 2번과 패키지로 묶어서 술 한번 사주고 ….

4. 근처에 화목난로 판매하는 곳이나 연료 판매하는 곳이 있으면 연락해보자. 어느 정도 양이 되면 (그 동네에서 한꺼번에 보통 판매하고 수익금을 1/n 로 나누거나, 다들 모여서 술 한잔 하고 끝내거나, 마을 발전기금으로 적립해놓거나…) 트럭 몰고 와서 이런 폐기물을 가져가기도 한다. 이때, 그대로 가져가는 경우도 있고, 파쇄해서 달라는 곳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공장에서 사람을 보내서 1,2 번 작업을 해서 가져가기도 한다.

5. 파쇄한 잔재가 얼마 안되면 집에 난로 하나 놓고 조금씩 태워도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폐기물 또는 가연성 쓰레기로 배출해야 한다.

호박도 수확이 끝나고 가을이 돼서 이파리가 시들고 줄기가 마르면 예초기 들고 다니면서 잘라줘야 한다. 물론, 내년에 시작할 때 어차피 관리기로 갈아 엎으면 다 잘릴 건데.. 싶겠지만, 저런 줄기가 의외로 질겨서 관리기 날에 끼어서 작업 속도를 떨어뜨리는 데 큰 역할을 하므로 관리기 작업전에 낫이나 예초기로 잘라줘야 한다.

이렇게 뒷처리까지 다 끝내야 그해 농사가 마무리 된다.

좀 횡설수설 하긴 했지만 … 정리하자면,

1. 텃밭 수준이 아닌 면적의 농사를 처음 시작한다면 옥수수와 늙은 호박을 심어봐라. (애호박 같은 거 말고 .. 애호박은 관리가 엄청나게 많이 필요하다.) 이때, 퇴비나 비료는 뿌리지 말고 …

2. 수확량을 보고 땅의 상태를 확인하자.

3. 일반적인 경우 1,000평방미터(약 300평)당 20kg 짜리 퇴비 30포대 정도가 1년 필요량이지만, 2번을 보고 판단하면 1.5 ~ 2배를 투입해야 할 수도 있다.

4. 어쩌면 객토나 성토가 추가로 필요할 수도 있다.

5. 수확을 마치고 나면 옥수수는 뿌리까지 뽑아주고, 호박은 늦가을쯤에 예초기나 낫으로 줄기를 잘게 썰어놔라…

6. 3번에서 얘기한 퇴비를 뿌릴 시기는 수확을 마치고 땅이 단단해질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가 좋다. 필요량을 한꺼번에 뿌려놔도 좋고 절반 정도는 이맘때 뿌리고, 나머지 절반은 내년 봄에 땅이 녹기 전에 뿌리는 것도 좋다.

7. 옥수수와 늙은 호박은 웬만해서는 어느 정도 품질이 나오므로 (특히 늙은 호박 … ) 주위 사람들에게 티내면서 주기도 좋지만, 버릇 잘못들이면 때가 되면 내놔라.. 가 될 수 있으니 힘들었다는 티를 팍팍 내자. (다시 말하지만, 이 둘은 특별히 관리 안해도 어느 정도 자란다. 관리하면 더 잘 자란다.)

자 이렇게 .. 실제 작물 재배가 시작되는 거다.

Welcome to the Real World.


2022.03.29 akpil

논현동_이야기_21편.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2/07/06 11:41 저자 akp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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