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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_집짓기_경험담_18편

준비물

학교 다닐 때 아침마다 (성적 좋은 친구들은 그 전날 저녁에 미리..) 확인하는 게 시간표와 준비물이었다. 초등학교때를 생각하면 물체주머니, 리코더, 체육있는 날엔 체육복을 준비해서 학교에 갔다.

집도 마찬가지다.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길가다가 좋아 보이는 집 있어서 덜컥 샀는데, 대박이더라… 라든가, 밤에 자다가 꿈에 웬 도인이 나타나서 남동쪽으로 가면 … 이라고 해서 무작정 남동쪽으로 가다가 웬 부동산이 보여서 들어가서 물어보니 … 뭐 이런 건 그냥 전설의 고향이라고 보면 된다.

그럼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 위에 쭉 써놓았었는데, 이제 이 집짓기 경험담도 거의 끝나가고 있어서 정리할 겸해서 쓴다. 순전히 내 경험으로 쓰는 거니깐 그냥 참조만 하자.


시간과 돈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시간과 돈이다. 시간은 여기저기 다니면서 토지와 집을 보러 다니는 시간을 뜻하고 돈은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고른 것을 살 돈을 뜻한다. 아무리 돌아다녀봐야 돈이 없으면 결국 좋아 보이는 남의 집일 뿐이고, 반대로 돈이 아무리 많아도 돌아다녀볼 시간이 없다면 그냥 지금 살고 있는 곳에 사는 게 어쩌면 더 편하고 좋을 수도 있다.

무협만화나 판타지 소설, 또는 게임에서 보면 경험을 쌓으면 레벨이 올라간다.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더라도 일정치 이상의 경험 또는 레벨에 도달하지 못하면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집, 그리고 그 집을 둘러싸고 있는 입지조건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내가 여기서 글로 써서 얘기를 해도 아.. 그렇구나 .. 이지, 이게 자신의 지식이 될 수 없다. 시간 나면 돌아다녀 보라. 주말에 집에서 뒹굴 거리거나 피곤하다고 낮잠 자는 것도 좋다. 하지만, 한달에 한두번 정도는 여기저기 다녀보자. 카메라, 노트를 준비해서 적어두는 것도 좋다. 요새는 에버노트가 있어서 매우 유용하다. 기억력 좋다고, 머리 좋다고 메모하지 않으면 한달쯤 지나면 점점 머리에서 잊혀져 간다. 반드시 기록하라. 내 경우에, 에버노트 유료 기능을 쓰게 된 것도 사진 등을 정리하다보니 용량이 부족해서인 점도 있었다. 인터넷에서 뒤적이는 게 아니라, 직접 돌아다니면서 보고, 확인하자.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좋다' 라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보아온 것보다 상대적으로 좋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그런데, 보아온 경험 자체가 적으면 막연히 그냥 남들이 좋다고 하면 그게 좋은 것인 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일단 무조건 많이 보자. 보다보면 안목이 생기고, 내가 어떤 집에서 살면 좋을지 기준도 서게 마련이다. 한달에 한곳 정도를 방문한다면 1년에 적어도 10곳, 3년쯤 되면 30~40곳 정도 된다. 그리고 한곳만 방문하는 경우는 별로 없고, 보통 2,3 곳 이상, 많을 땐, 4,5 곳 이상을 방문하기 때문에 3년쯤 돌아다니면 100 곳의 전원주택 단지 또는 전원주택을 볼 수 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안목이 높아져 있는 상태이다. 물론, 너무 높아져도 문제이지만, 업자말에 현혹되는 것보다는 낫다.

돈은 더 미리 미리 준비해두어야 한다. 물론, 집이 원래 부자… 이런 경우라면 이런 글을 읽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싸다고 해도 2억원대 중반 이상, 비싸면 엄청나게 비싼 게 바로 집이다. 어찌 보면 평생 획득 가능한 자원의 상당 부분을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부동산 몇곳 다녀보고 집을 산다는 건 큰 문제가 있다. 앞에서도 몇번 적었지만, 자금 조달, 그리고 대출을 받는다면 그 대출을 어떻게 갚아나갈 건지에 대해서 미리 실행가능한 계획이 서 있어야 한다. 더이상 부동산으로 돈 벌기는 어려운 시대가 됐다. 그러니 5년전 아파트처럼(또는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이거 사면 2년 뒤에는 15% 오를테니 일단 대출받아서 집을 사고, 2년 뒤에 팔아서 더 큰 집으로 .. 이런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어쩌면 지금이 부동산 최고점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거의 최고점일 가능성이 높다.

하여간에 어른들이 말하는 “사두면 오른다.” 라는 건 이제는 불가능하니깐, 팔아서 갚을 생각은 뒤로 미루고, 어떻게 대출금을 갚을지 계획이 분명해야 한다. 또한, 지금 통장에 있는 돈 + 살고 있는 집을 처분하여 얻을 수 있는 돈도 잘 생각해 보자. 통장에 5천만원 있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거나 전세를 빼서 받을 수 있는 돈이 1.5억원이라고 해서 2억원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식구 중에 누가 아플 수도 있고, 집주인이 파산해서 전세금의 일부를 못 받을 수도 있다. 대략 70~80% 선이라고 보면 안전하다고 본다. 저 돈이 2억원이라면 실제로 투입 가능한 돈은 1.4 ~ 1.6억원 정도가 된다고 보면 된다.

돈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적자면, 세금과 각종 수수료(법무사, 부동산 등) 등은 일단 최대치로 잡아놓자. 보통 부동산이나 건축업체와 얘기할 때는 최소치로 줄여서 얘기하는데, 대충 두배쯤으로 예산을 잡아두자. 그러면 실제로는 그 예산의 80~90% 정도가 실제로 쓰일 거라고 보면 된다. 웬 세금은 그리도 종류가 많고, 또 그것을 내려면 법무사 등에게 내야 할 수수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자기 자신이 세무사 자격증이 있다면야 뭐…) 그리고 계약할 때 저런 세금에 대해서도 명확히 해두어야 한다. 자기네들이 내야 할 세금을 슬쩍 건축주에게 또는 구매자에게 떠넘기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서 계약할 때 계약서에 언급되지 않은 세금은 모두 건축업체(또는 부동산)에서 낸다. 라고 쓰자고 하면 매우 당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30초 전까진 세금 그거 별거 아니에요. 라고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입장이 확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세금에 대해서 명확하게 하자. 라고 하니 그 자리에서 계약이 파토나는 경험을 두번 했다. 그 뒤로는 아예 처음부터 세금은 어떻게 할지 선을 긋고 얘기했다.

사실, 돈을 어떻게 한다라는 계획이 제대로 잡힌다면 해야 할 일의 60% 이상은 끝난 거다.


업자/업체 많이 만나기

가장 쉽게 업자 또는 업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코엑스나 킨텍스 등에서 일년에 몇번씩 있는 건축관련 전시회다. 전시회장을 검색해서 일정표를 보고 몇번 가 보면 어떤 업체들이 있고, 어떤 기술이 있고 … 등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 브로셔, 카탈로그 등을 가져와서 공부하자. 내 경우는 처음에는 스틸하우스를 알아보았으나, 전시회도 몇번 가보고, 업체들 만나서 얘기도 들으면서 대상에서 제외했다.

유명건축가 사무실에 가봐야 어차피 그 건축가 만날 확률은 매우 적다. 그러니 그냥 가서 상담만 해보자. 그리고 설계비를 받아들고 놀라자. 얼마든지 놀랄 수 있다. 놀라야 한다. 결정은 내가 하는 거다. 뭐 견적서에 10억이라고 쓰여 있더라도 구입하지 않으면 10억원은 그냥 종이에 쓰인 숫자일 뿐이니까 …

건축업자/업체도 많이 많이 많이 만나보자. 만날 때 신기술 또는 새로 개발된 소재 어쩌구 하는 건 그냥 참고만 하자. 신기술은 검증되지 않은 기술이라는 뜻이고, 그것을 강조한다는 것은 “나는 당신을 호구로 봤고, 가격을 많이 쎄게 부를 거다.” 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동산업자가 좌청룡 우백호 운운하면서 풍수지리 애기를 하는 것과 같은 뜻이다. 적어도 10년, 길게는 2,30 년 이상 살 집인데, 새로 개발돼서 검증안된 소재를 쓴다는 건 말이 안된다. 신기술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10년쯤 지나서 어느정도 인정 받은 기술은 신기술이라고 하지 않고, 소재 역시 마찬가지다.

업체를 많이 만나고 거기서 현재 건축중인 현장, 건축했던 현장에 대한 내용을 들고 직접 방문해보면 그 업체의 시공 능력이 나온다. 특히 지금 짓고 있는 현장이 있다면 꼭 가보자. 그 집이 당신 집이 될 확률이 높다. 그러니 꼭 가보고, 직접 그 짓고 있는 집의 벽채, 기초 등을 확인하자.

대충 열곳 정도 만나면 감이 온다. “아 사기꾼이구나…” 한두곳 쯤은 드물게 “아 이 정도면 제대로 짓겠구나…” 그러면 그 업체와 얘기하면 된다. 어떤 업체는 꽤 괜찮은 것 같은데, 자기네들은 여력이 안된다고 다른 곳을 소개해 주기도 한다. 물론, 요새는 건축물량이 적어져서 그런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업체 또는 업자를 만날 때 어느 정도 말이 오가면 반드시 돈 얘기를 하라. 퉁쳐서 얼마..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가급적 상세하게 … 이번에 집을 지은 업체는 너무 돈돈거리기는 하는데, 차라리 그게 낫다. 주차장 미장 면적을 조금 늘려 달라고 했더니 이것도 돈인데.. 라고 한다. 그러면 차라리 얼마냐 라고 묻고 협상하는 게 낫다. 데크 공사 후에 난간을 설치해 달라고 했더니 역시 돈 얘기를 한다. 당연하다. 나중에 부실공사라는 뒷통수를 맞는 것보다는 차라리 돈을 더 주는 게 낫다. 추가 공사 진행할 때도 미리 견적서 받고, 합의해서 한다. 그리고 현장에서 현장 소장 또는 반장에게 얘기해서 조금 더 … 하는 게 낫다.

물론, 개인의 취향마다 다르다. 견적서를 보니, 이거 저거 요거 해서 1,500 만원인데, 500 만원 깎아서 1,000 만원에 합시다. 라고 했을 때 통 크게(이게 사업하는 사람에게도 통용되는 건지는 … 좀 미지수이긴 한데…) 그럽시다. 라고 하면 1. 견적서가 뻥튀기 된 거다. 2. 부실공사가 된다. 3. 사장이 돈에 대한 감각이 별로 없거나 사업을 취미로 한다. 정도가 된다. (근데, 경험상 저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지 않게 깎게 된다.)


가족 설득

가장 힘든 게 가족을 설득하는 거다. 처음부터 아파트 떠나서 변두리(?)에 있는 시골집으로 들어가겠다고 하면 100% 반대에 부딪히고, 한번 반대하면 관성이 있어서 반대가 계속 된다. 그러니 주말에 바람 쏘이러 가자고 해서 어디 놀러 갔다가 근처에 있는 전원주택단지를 쓱 지나오면서 '오 집 이쁜데… 한번 가 볼까 ?' 정도로 시작하는 게 좋다. (내가 이렇게 했다.)

몇번 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코스가 잡힌다. 한달에 한번 정도 이렇게 해서 반년에서 1년쯤 지나면 마음의 벽은 상당히 누그러진다. 그때쯤부터 슬슬 설득에 들어가면 된다.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하자.


리스트 작성

뭐가 필요하고, 뭐가 좋고 .. 이런 것을 쭉 작성하자.

예를 들자면 애가 하나니깐, 방은 안방, 애 공부방, 서재 이렇게 3개, 내가 컴퓨터가 많으니 서재에 컴퓨터 5대 놓을 자리는 있어야 하고 … 애가 둘인데, 아들 딸 하나씩이어서 지금은 어려서 같은 방에 재우지만, 초등학교 들어가면 방을 분리해 주어야 하니 안방 1, 애들 방 2, 서재 1, 거실, 부엌, 화장실… 내가 검도를 좀 하니깐 마당에는 목인형 또는 짚단을 세워놓고 목검으로 연습할 장소가 필요하고 .. 어쩌다보니 차가 3대라서 이 3대를 주차할 공간이 필요하고 … 등등 …

이런 식으로 쭉 적자. 처음에 적으면 공상소설이 된다. 쓰다보면 수영장도 적고, 황토찜질방도 적혀 있을 거고 … 이렇게 쭉 적어놓고 며칠 있다가 들여다 보고, 한달쯤 있다가 들여다 보고 .. 이걸 반년쯤 하면 대략 정해진다. 그런 다음에 이걸 현실에서 실현가능한 형태로 바꾸어야 한다. 노트에 연필로 그려본다든가, 캐드나 그래픽을 할 줄 알면 그걸로 그려본다든가. …

이런 리스트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도면(그것이 비록 A4 지에 모나미 볼펜으로 대충 그린 것일지라도…)을 들고 업체를 만나면 그냥 말로 설명할 때와 반응이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것을 쓰면서 정리하다보면 대략 입지조건이 어떤 곳으로 가야 할 지도 정해진다. 예를 들어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여서 매일 새벽기도를 나가야 하니 가까운 곳에 괜찮은 교회가 있으면 좋겠다라든가, 애들이 3,4 살인데, 유치원(또는 어린이집)도 가깝고, 몇년 있으면 초등학교도 들어가야 하니 학교가 가까운 곳이면 좋겠다. 내가 병원엘 한달에 한번씩 꼭 가봐야 하니 … 이런 식으로 자기 스스로도 정리가 된다.

내 요구조건이 명확하고 그것이 나 스스로도 정리가 되어야 업체를 만나서 얘기할 때도 요구조건을 제대로 얘기하고, 상대방이 방향을 내 생각과는 다르게 끌고 가려고 할 때 막을 수 있다. 집을 짓다보면 온갖 유혹이 올텐데, 결국 돈이 추가로 더 들어간다는 얘기다. 일정 정도는 옵션으로 몇가지 고를 수도 있겠지만, 잘못하면 본말이 전도돼서 대출 받으러 뛰어다니는 자신을 볼 수 있다.


이유

이런 작업을 하다보면 정말로 이사를 가야 하나 ? 가서 무엇을 하지 ? 왜 가려는 거지 ? 라는 의문이 들 것이고, 그것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 답이 생겼을 때 집을 짓거나, 지어진 집을 분양 받아서 옮겨가거나 해도 늦지 않는다. 그냥 유행이니깐, 막연히 전원주택은 좋을 것 같아서, 이뻐 보여서, 어른들 말씀에 땅은 거짓말을 안한다고 하니 사두면 오를 것 같아서 … 라는 정도의 이유라면 글쎄… 아마 후회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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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9 akpil

나의_집짓기_경험담_18편.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7/02/24 20:54 저자 akp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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