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전원주택에서 살려고 하는 걸까 ?

명확하고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하다못해 사두고 10년쯤 묵혀두면 땅값이 지금보다 2배쯤 오를 것 같다. 라는 부동산 투기적인 목적(어떤 자들은 이런 걸 투자라고 뻥친다.)이라도 있어야 한다.

전원주택에서 살려고 하는 사람들 또는 이것저것 알아보는 사람들과 얘기해 보면 대략 1/3 정도는 그냥 남들이 좋다니깐 따라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는 서울 종로구 어디쯤인데, 안성이나 용인 남사쯤에 집을 지으면 출퇴근이 꽤나 힘들다고 느껴질 거다.

이러한 것들은 극히 일부이며 더 많은 “꿈깨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다면 집 짓기전에 발생할 수 있는 몇가지 경우를 적어보자.

땅은 입지조건 등이 좋아 보인다. 그런데, 진입로가 없다.

의외로 많이 발생한다. 특히 '기획부동산'이 한번 쭉 쓸고 간 곳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보통 기획부동산은 어느 정도 면적이 되는 땅을 산 다음에 그걸 작게 쪼개서 여기저기 전화 걸어서 판다. 가끔 전화 오는 “사모님 좋은 땅이 있는데요.” 라는 전화가 바로 그것인데, 문제는 저런 일을 벌일 때 뒷일은 별로 신경 안 쓰고 쪼갠다는 거다. 그러다보니 길가쪽이 아닌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도로가 없는 거다. 땅주인들을 찾아봐도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땅주인을 어떻게 찾을 것이며, 겨우 겨우 어찌 저찌 연락이 됐다 치더라도 그들에게서 도로만큼의 땅을 어떻게 양보받거나 살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당신의 능력이다. 99.95% 의 확률로 불가능하다. 대부분은 자신의 땅을 통째로 사라고 할 것이고, 상당히 비싸게 부를 것이다.

전기, 수도, 하수도 .. 이런 것을 끌고 들어와야 사람이 살 수 있는데, 이런 게 없거나 입구에서 한참 멀어서 인입비가 수천만원이 넘을 수 있다. 포크레인 하루 와서 작업하면 적어도 50 만원이다. 땅파고, 전선, 전화선, 수도파이프, 하수도 배관 묻고, 다시 묻고 그 위에 포장을 하거나 다지면 된다. 그렇게 파다가… 중간에 큼직한 돌이 나와서 하루 더 잡아 먹을 수도 있고, 마을 입구에 살고 있는 아무개씨가 반대하는 민원 넣어서 막걸리에 삼겹살 사드리고 3일동안 설득해서 작업을 진행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3일동안의 일당은 그대로 나간다. 생각 같아서야 “저 입구부터 우리집까지 200 미터니깐 500 만원에 합시다.” 라고 하고 싶겠지만, 현실은 열흘 걸렸으니 “중장비 임대료 500 만원 + 인건비 하루 20만원x10일x3명 + 밥값 + 담배값 + 간식값 추가”가 된다. 말이 담배값이지 하루에 한보루씩은 피우나 보다… 웬 담배값을 그리 많이 요구하는지..

있기는 한데, 한 2km 쯤 걸어가야 한다면 그냥 없는 셈 치는 게 낫다. 물론, 차가 있으니깐 … 하고 괜찮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런 것 때문에 대부분의 전원주택 생활자들은 차가 2대다… 한대는 남편 출퇴근용, 한대는 집에서 쓴다. 이건 집에서 백미터 떨어진 곳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당장 남편이 회사 갔는데, 시내 나가서 장 봐오려면 … 버스 타고 가도 별 문제는 없겠지만, 쉽지는 않고, 애라도 아프면 당장 차 사고 싶어진다.

이건 매우 주관적이다. 동네가 할아버지/할머니들이 대부분이라면, 또 집성촌이라면 웬만한 친화력으로도 들어가면 거의 동물원 원숭이 되기 십상이다. 온갖 참견에 … 자기네들이 다 결정해놓고 도장만 찍으라는 경우도 있고, 10월 중순이라고 단풍놀이 가기로 결정했다며 버스 대절한다고 10만원씩 내라고 돈 받으러 오는 경우도 있다. 나는 출근해야 하는데, 평일에 무슨 단풍놀이인가.. 싶겠지만 돈이라도 내야 한다. 안내면 ? 아파트에서야 또는 도시에서야 앞집하고 얼굴 안 보고도 살 수 있지만, 도시를 벗어나면 그렇지 않다. 게다가 집을 지으려고 할 때도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하여 귀찮게 구는 경우가 많다. 노홍철급의 철판 얼굴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피하는 게 좋다.

한밤중에 애가 갑자기 열나서 급한데, 차 몰고 나가도 한시간이 걸린다. 대개는 병원 도착하면 열이 내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사하면 그냥 열 난 거라며 해열제 처방해주는 경우가 많지만, 반대로 의사로부터 “이 지경이 되도록 뭐했느냐” 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난 저 말 안하는 의사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간단히 몇가지만 적어 봤지만,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다면 매 앞에서 언급했던 왜 ? 살려고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후회한다. 아파트와는 달리 쉽게 이사갈 수도 없다는 것 정도는 다들 알 것이다.

앞에서 얘기한 것과 상당히 겹치지만, 전원주택의 단점 몇가지 예를 들어보면,

주말마다 마트 또는 백화점에 가서 윈도우 쇼핑이라도 해야 사는 것 같다는 사람(주로 여자…)도 많은데, 무지하게 답답할 걸 ? 지금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수퍼마켓이 직선거리로 1km 쯤, 걸어서는 1.8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나이드신 부모님께서 노후에 편안하게 … 라고 생각한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나이들수록 병원과 가까이 살아야 한다. 자녀도 어릴수록 병원과 가까이 있어야 한다.

초/중/고등학교 다니는 자녀가 있다면 학교위치도 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인도없는 국도로 한시간쯤 걸어가야 학교가 있는 곳일 수도 있고, 버스타고 30분쯤 가야 하는데, 버스가 1시간마다 한번 오는 곳일 수도 있다. 학원은 꿈도 못 꾸는 경우도 많다. 물론, 나는 학원은 애가 가고 싶다면 가는 거고 내가 강제로 보낼 생각 따위는 없지만, 사교육을 꼭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전원주택은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매우 줄어든다.

교통편도 체크해 보아야 한다. 집에 차가 없다면 고립되는 경우도 많다. 거리상으로는 가까운 곳에 버스 정류장이 있지만, 그 사이에 높은 언덕이 있을 수도 있고, 버스가 1시간마다 한번 오거나 하루 4번만 다닐 수도 있다. 이게 강원도나 충북 산골 얘기가 아니라 경기도 용인시에서도 저런 지역이 있다.

대개 “마당이 있는 집”이라는 것에 매우 현혹된다. 현혹이라는 말을 쓴 것은 그것이 환상이기 때문이다. 마당에서 뭘 할 건데 ? 텃밭에 상추 심고 고추 심어서 삼겹살 사다가 주말 저녁에 텃밭에서 상추랑 고추 따다가 먹는 뭐 그런 것 ? …… 농사지어본 적이 없다면 한 2년은 넘게 걸릴 걸 ? 물론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진행하면 상관없지만 당장 저걸 바란다면 실패할 가능성 80% 이상이다. 당장 상추 어떻게 심는지, 고추 모종 간격이 얼마인지 아는 사람 ? 구글링하지 말고 … 거기에다가 잔디밭 있으면 보기 좋다. 그런데, 여긴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다. 잔디 깎아본 사람 ? 품종에 따라서 어떤 비료를 주어야 하고 어떻게 깎는지 아는 사람 ? 없다. 공부한다고 ? 어디서 ? 구글링해서 ? 예전에 CF 에서 나온 건데, “책으로 배웠다”라는 말이 있는데 딱 그 짝이다. 결국 겨울 한번 나고 나면 1/3 정도는 죽고 겨우 겨우 살려서 3년쯤 지나야 자리 잡는다. 그럼 비료는 어떻게 주고 어떻게 깎는데 ? 기껏해야 몇십평 짜리 마당에 있는 잔디 깎으려고 전동 또는 엔진달린 잔디깎개를 살 수는 없고, 수동을 사면 … 그거 어떻게 관리할 건데 ? 한 시즌 지나고 나면 기어는 기름칠 안해서 뻑뻑해지고, 칼날은 녹슬어서 안 깎인다. 그렇다고 한번 쓸 때마다 닦고 조이고 기름칠 것도 아니잖아…

주말마다 마당에서 바베큐 해먹는다는 야심찬 계획도 있는데, 저기 태평양 건너 미국 백인 중산층의 1950 ~ 1970년대 코스프레는 이제 그만둘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그거 뒷정리는 누가 할 건가를 생각해 보라. 고기 먹고 싶으면 근처 고기집에 가든지, 집에서 구워먹으면 된다. 웬 바베큐 ? 미국식 드넓은 저택이 아니다. 오히려 중부유럽에 있는 오밀조밀 모여 있는 마을이 전원주택에 더 가깝다.

이웃하고 친하고 음식도 나누어 먹고 .. 오손도손 … 꿈깨시라. 여태까지 한번도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는데, 그걸 어떻게 할 건데 ? 아파트 살 때 바로 앞집과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눈인사만 하는 정도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어떻게 ? 위에서도 말했지만, 친화력이 만렙수준이 아니라면 상당히 오래 걸린다. 물론, 아이들 나이가 비슷하다거나 얘기하다보니 고향이 같은 동네였다거나 등등의 공통 분모를 만나면 생각보다는 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적게는 5년 정도, 길게는 20년 이상을 도시환경에 적응해서 살았는데, 갑자기 도시를 벗어나면 다시 그 환경에 적응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아파트에서는 보통 관리사무소에 연락하면 대부분 해결된다. 하지만, 전원주택에 산다는 건 관리비를 안내는 대신 그것을 내가 몸으로 때워야 한다는 것을 감수하겠다는 거다. 덕분에 공구류는 자꾸 늘어가고, 용도를 잘 모르는 집사람은 왜 드라이버가 십자/일자 하나씩만 있으면 됐지 5개씩 있냐고 뭐라고 하고, 뭐하러 전동 드라이버는 자꾸 늘어가고, 톱은 하나만 있으면 됐지 뭐하러 3개가 있냐고 자꾸 뭐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어디에 둘 곳도 마땅치 않다. 하지만, 공구류에 관심이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까 ? 잘만 설득하면 전동드라이버 종류별로 만져볼 수 있고, 각종 공구류도 원하는대로 갖출 수 있다. 물론 통장 잔고는 꼭 확인해야 한다. 별 생각없이 전동공구 몇개 사면 월급은 사라진다.

위에 적은 모든 것이 명확해야 한다. 왜 단독주택, 전원주택에서 살려고 하는가 ? 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물론, 방사능/온갖 폐기물로 오염된 콘크리트로 지어진 아파트가 싫어서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199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오래됐으니 물 좀 새고, 불편한 것도 있겠지… 목재로 집을 짓는다고 해서 콘크리트가 전혀 안 쓰이는 것도 아니다. 기초 공사나 각 층마다 바닥 공사에는 아직까지 콘크리트가 많이 쓰이고, 이게 폐기물로 오염안된 콘크리트라는 보장도 없다. 집에는 어찌 어찌 안 쓰더라도 진입로를 포장하더라도 콘크리트가 쓰인다. 물론, 콘크리트 박스인 아파트보다야 훨씬 적지만 어쨌거나 콘크리트는 피할 순 없다. 다만 멀리할 수는 있다.

집은 제대로 지을 수 있을까 ?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해당업체와 관련된 문제다.

아파트는 대개 어느정도 공신력이 있는(이라고 쓰고 대형 이라고 읽으면 된다.) 건설업체에서 진행한다. 물론, 요새는 경기침체로 인하여 대형 건설사들도 문을 닫네 마네 하고는 있지만, 어쨌든 그래도 신뢰도는 있다. 그런데, 직원 몇명있고, 사장도 망치들고 공사하는 그런 소형업체가 과연 집 짓고, 하자보수기간동안 버텨줄까 ? 뉴스에 보니 어제도 30개 업체가 문 닫았다는데…

잘 고르는 수 밖엔 없다. 저 앞쪽에 써놓은 것도 내가 겪고 들었던 것이지 그것이 모든 것은 아니다. 용인이나 안성, 광주, 이천 등 경기남부 지역을 다니다보면 짓다가 중단된 곳, 터만 닦다가 그대로 멈춘 곳, 거의 다 지었는데, 유리창이 없는 곳, 유치권 행사중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는 곳 등을 쉽게 볼 수 있고, 한 30가구쯤 들어올 수 있는 면적에 단지를 조성했는데, 2,3 집만 들어와 있고 나머지는 공터로 남아 있다든가… 물론, 제대로 다 들어와서 사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문제가 생기면 거의 전재산을 날릴 수도 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왜 전원주택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한번 결정했으면 그냥 밀고 나가자. 고민 오래 한다고 좋은 결과 나오는 건 아니다.

2014/10/15 akp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