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은 개뿔 …

나는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중학교 들어갈 때까지 고추장으로 양념한 떡볶이를 먹지 못했다.

매운 음식을 잘 먹는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는 “한국 사람은 자고로 청양 고추 팍팍 넣어서 맵게 먹어야 …” 라면서 뭐라고 하곤 한다.

한국사람이 언제부터 매운 것을 먹게 됐을까 ?

우리가 흔히 먹는 매운 향신료인 고추부터 보자…

고추는 중남미가 원산지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5세기말에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였고, 그 뒤에 포르투갈 사람이 남아메리카(지금의 브라질 지역)에서 고추를 발견해서 유럽에 전파했다는 게 정설이다. 그리고, 16세기 중반에 일본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이것은 중국을 통해서 16세기 말 ~ 17세기 초에 전해진다. 그리고 널리 퍼진 건 임진왜란 이후다.

그전까지는 후추나 마늘, 달래, 겨자 등이 매운 양념으로 쓰였다. 후추나 겨자는 고급 양념이었고, 대개는 달래나 산초였다.

아참 청양 고추가 매운 거라고 ? 정말 매운 맛을 못 본 거다. 매움의 정도는 스코빌 단위로 나타내는데, SHU(Schoville Heat Unit) 로 나타낸다. 청양고추는 10,000 SHU 정도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가장 매운 고추는 인도산 Bhut Jolokia 라는 품종인데, 대충 800,000 ~ 1,000,000 SHU 다. 100 배 정도 맵다. 흔히 “쥐똥고추” 로 알려져 있는 태국의 프릭끼누는 100,000 SHU 다. 청양고추의 10배다.

그러니 청양고추 몇개 먹으면서 매운 것 잘 먹는다고 얘기하는 건 말 그대로 포크레인 앞에서 삽질하는 수준이다. 리누스 토발즈 앞에서 “나 커널 컴파일 할 줄 알아요” 라고 애교 부리는 거랑 별 차이가 없다.

어찌 됐든 17세기 초반에 한국에 전해진 고추는 … 생각보다 널리 퍼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기후 + 알파 때문인데, 일단 한국에 들어온 고추가 한국 기후에 적응해서 진화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18세기 초반이나 되어야 순창 지역에서 고추장을 만들기 시작한다. 왜 순창인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일단 순창은 곡창지대고 남부지방이다. 일단 남부지방이니 고추 원산지와 유사하므로 다른 지방보다 먼저 적응해서 자랄 수 있었고, 곡창지대이니 상대적으로 풍요롭기 때문에 고추를 길러도 될만한 시간과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세기 말에서 20세기초나 돼서야 전국적으로 고추를 심는다. 하지만, 여전히 경기도보다 북부지방에서는 많이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경기도의 대표적인 김치가 백김치이고, 북한의 대표적인 김치가 동치미류가 된다. 고추 몇개 집어넣는 거지 고추를 가루를 내서 버무릴 정도까지는 생산하지 못했다.

한국사람이 매운 것을 잘 먹는다고 ? 위에서 언급했듯이 진짜 매운 것은 먹어보지도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기껏해야 태국의 1/10 수준이고, 인도의 1/100 수준이다.

매운 것을 잘 먹는 게 전통이라고 ? 고추가 들어온 게 400년, 전국적으로 퍼진 게 100년 됐다. 그리고 지금 처럼 아무 음식에나 다 고추장이나 고춧가루 퍼넣기 시작한 건 6.25 한국전쟁 이후다. 그전까지 떡볶이는 요즘에는 간장 떡볶이라고 부르는 간장 양념 떡볶이가 대부분이었고, 김치는 대부분 배추나 무를 소금에 절인 거고 거기에 고추 몇개 썰어넣은 음식이었다. 근데 그게 무슨 전통인가…

매운 고추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청양고추는 1980년대 중반에 개발된 품종이다. 기껏해야 30년 된 거다. 불과 10년전까지만 해도 청양고추는 경상도 일부 지방과 서울 지역 몇몇 음식점에서나 쓰는 그런 식재료였다. 근데, 그게 무슨 전통인지 …

전통은 개뿔 ..


2016/01/14 akpil